[스포테이너즈=고초록 기자] “프로레슬링은 결국 제 인생의 전부죠. 다시 태어나도 해야죠.”
원로 프로레슬러 임대수 총재가 반세기에 걸친 자신의 프로레슬링 인생과 ‘박치기왕’ 김일, 고(故) 이왕표와 함께했던 시절을 회고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대한프로레슬링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195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임 총재는 초등학교 시절 핸드볼을 거쳐 중학교부터 아마추어 레슬링을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 TV를 통해 김일의 경기를 본 뒤 프로레슬러가 되기로 결심했고, 김일이 이끌던 도장(창덕궁 비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훈련은 혹독했다. 임 총재는 하루에 스쿼트를 500~1000개씩 하고 낙법과 구르기를 반복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약 8년 동안 막내 생활을 하며 운동뿐 아니라 장보기와 밥, 빨래까지 도맡았다고 했다.
그는 “낙원동 시장까지 걸어가 장을 보고 밥과 반찬을 만들었다”며 “겨울에도 찬물로 빨래하고 설거지를 했다. 8년 동안 내 밑으로 후배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일에 대해서는 링 밖과 훈련장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던 스승으로 기억했다. 임 총재는 “평소에는 고기를 직접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챙겨줄 정도로 정이 많았지만, 운동 시간이 되면 완전히 돌변했다”며 “못하면 굉장히 냉정하고 무서울 정도로 강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왕표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임 총재는 문화체육관(서울 정동) 시절 이왕표가 처음에는 키가 크고 매우 마른 체형이었다면서도 이후 몸이 붙기 시작하면서 프로레슬러다운 체격을 갖추고 두각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당초 김일의 후계자로는 김일의 막내동생 김광식과 ‘역발산’ 양승휘가 유력해 보였다는 게 임 총재의 기억이다. 그는 “그때는 김광식 선수와 역발산 선수가 상당히 유력한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봤다”며 “그 예측을 뒤엎은 게 이왕표 선수였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200kg이 넘는 외국인 선수를 들어 메친 순간을 꼽았다. 발목이 부러진 상태에서도 압박붕대를 감고 여러 날 연속 경기에 나섰던 일화도 털어놨다.
김도유와는 김일의 지시로 태그팀을 결성했다. 임 총재는 1984년께 일본 선수들을 꺾고 태그 챔피언에 올랐던 것으로 기억하며 “갑자기 챔피언 벨트가 허리에 둘러지는데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고 회상했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쇠퇴 원인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임 총재는 특정 스타가 지나치게 오랫동안 중심에 서면서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새로운 선수와 새로운 그림이 계속 나왔어야 했다”며 “신인 선수를 발굴해 집중적으로 키우고 선수 교체가 빨리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운동선수의 불안정한 미래를 일찌감치 직시했던 그는 현역 시절 제약회사와 건설사 기획실장을 병행하며 은퇴 후 성공적인 사업가로 안착했다. 중학 시절 소년 천하장사에 오르고 프로 씨름단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장남이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선수 생활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미련 없이 아들의 선택을 지지했다.
50년 가까운 세월을 돌아본 임 총재의 마지막 대답은 간결했다.
“젊은 시절에는 프로레슬링보다 세상에서 더 좋은 직업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을 다 걸고 살아왔어요. 결국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후회도 없습니다.”
이어 ‘다시 태어나도 프로레슬링을 하겠느냐’는 질문에도 “그럼요. 다시 시작한다면 그전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죠”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