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파인더 김남훈 기자·스포테이너즈 고초록 기자 공동 취재] 경상남도 남해군청 복싱팀을 이끄는 김봉철 감독의 눈빛에는 링을 향한 변함없는 열정이 가득하다. 1990년대 한국 복싱계를 수놓았던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세계 랭커에서, 이제는 고향 남해를 지키며 후학을 양성하는 명장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인생을 조명한다. 특히 최근 남해군청 소속 강지숙 선수가 2026년 4월 열린 '2026 전국종별복싱선수권대회' 여자부 -65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김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이 다시 한번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 서러움을 이기려 낀 글러브, 어린 나이에 프로 무대로 향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소년은 홀로 남은 형제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글러브를 꼈다. 남해읍에 갓 생긴 열악한 체육관이었지만, 첫 스승인 유석수 관장 아래서 스텝과 스트레이트 등 '기본기'를 철저히 다졌다. 그러나 아마추어 시절, 전국대회 8강에서 훌륭한 경기를 펼치고도 판정패를 당하며 지역 출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에 굴복하지 않은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것이 내 직업"이라는 확고한 자신감을 안고 과감히 프로 무대로 전향했다.
• 90년대 최고 테크니션, 챔피언과 맞서다
프로의 세계에서 그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구도자처럼 활약했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철저히 자신을 다듬었다. 그의 복싱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순간은 서른 살 무렵 치렀던 '라크바 심'과의 경기다. 상대는 훗날 일본에서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괴물 같은 선수였고, 당시 직장 생활을 병행하던 김 감독은 체중과 체력의 불리함을 모두 안고 링에 올랐다. 주위에서는 포기를 예상했지만, 그는 "두 눈 뜨고 보면 주먹은 다 보인다"는 특유의 배짱과 정신력으로 10라운드를 끝까지 버텨내며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는 90년대를 호령한 세계 랭커 김봉철의 진가를 보여준 투혼의 무대였다.
• 다시 고향의 링을 살리다, 지도자로서의 철학
10년의 치열했던 서울 생활을 마치고 고향 남해로 돌아온 그는 본래 글러브를 벗으려 했다. 그러나 IMF라는 혹독한 시기, 고향의 체육관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주위의 간곡한 권유로 다시 링의 주인이 되었다. 지도자가 된 그는 정정당당한 기본기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시합 중 뒤통수를 때리는 등의 폭력적이고 비매너적인 플레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선수의 인성과 올바른 성격을 잡아주는 것 역시 지도자의 몫임을 강조한다. 일반 관원들에게는 무리한 스텝이나 훈련을 강요하지 않고 목적에 맞게 부드럽게 지도하는 유연함도 갖췄다.
• 늦깎이 챔피언 강지숙의 탄생, 그리고 태극마크를 향한 눈물
최근 김 감독은 늦은 나이에 엘리트 복싱에 도전한 강지숙 선수의 잠재력과 타격 파워를 한눈에 알아보고 그를 남해군청 팀으로 전격 영입했다. 나이를 고려해 근육이 무리하지 않도록 '짧고 굵은' 맞춤형 스파르타 훈련을 적용했다. 그 땀방울의 결과로 강지숙 선수는 단기간에 급성장하여 '2026 전국종별복싱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금 40% 정도 왔습니다. 막판까지 이겨내서 그 가슴에 태극마크 한 번 달아보는 게 제 평생의 지도자로서의 욕심입니다."
제자가 태극마크를 다는 날을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김봉철 감독. 복싱을 한 줄로 '노력의 대가'라 정의하는 그의 링은 오늘도 남해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영상 제공: 한국복싱커미션 KBM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BoxingM-KBM-Koreaboxing )
사진 출처: 남해군청